기수별 동문회


 

인터뷰) 광양 엔지니어의 대부 대광산기 오택상 대표

엔지니어 외길 50년…작업실 개방해 후진양성에 힘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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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시가 산업도시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금호동에 광양제철소가 들어서면서다. 광양제철소가 들어서자 그와 관련된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광양제철소는 이들 회사와 연계해 시너지를 내면서 지금에 이르게 됐다. 

 이러한 성과가 있기까지 그 과정 속에 많은 엔지니어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활약이 펼쳐졌다. 엔지니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광양제철소 및 관련회사들은 빠른 기간 내에 제대로 된 설비를 갖추지 못했을 터. 

지금의 광양 산업을 있게 한 그들의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그 많은 엔지니어 중에서 엔지니어의 대부로 불리는 이가 있어 만나본다. 바로 대광산기의 오택상 대표다.

■ 엔지니어링의 대부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서 엔지니어링 기술을 배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엔지니어링의 대부라는 말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단지 지금까지 엔지니어링 기술 하나만 믿고 달려왔을 뿐입니다.” 

 오택상 대표는 서울 성동공고를 졸업하고 그해 바로 포항제철소에 입사했다. 그때가 1974년이다. 포항제철소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일관 제철소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었는데, 오택상 대표는 포항제철소 공무부에 근무하면서 설비와 관련된 엔지니어링 기술들을 습득했다. 그리고 그 지식습득이 지금의 설비 구상 및 설계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밑받침이 됐다고 말한다.

 “공장의 설비들을 포함해 여러 가지 우리들 삶에 필요한 것을 만들기 위해 설계하고 작업하는 응용과학을 우리는 공학(engineering)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 기술자를 엔지니어(engineer)라고 합니다.”
그는 엔지니어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과학과의 차이점을 언급했다.

 “공학과 과학은 다른 개념입니다. 과학은 순수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인간 지식의 확장을 목표로 자연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공학은 이러한 과학이 밝혀준 사실들을 종합해 현실적으로 사용될 무언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만드는 과정에서도 과학은 그 근거가 당연히 뒷받침 되어야 하지만 공학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공학은 자연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까지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설계가 구체적이고 정확한 수치로 설정되지 않는다면 실패를 부르게 됩니다.”

 그는 포항제철소에서 1987년 퇴사하고 서울에서 개인 사업을 하던 중 후배의 권유로 1989년 광양으로 내려왔다. 광양에 내려와서도 이 일을 계속했으니 오직 엔지니어링에만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전념해 온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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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보통 고객으로부터 어떠한 기계가 필요하다고 주문을 받으면 그것을 설계하고 맞춤제작까지 지원하고 있다. 한때는 일본의 미쓰비시 기업에서도 주문을 맡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소문이 나면서 오 대표에게 엔지니어링 기술을 배우는 이들이 많아졌고, 순천대학교, 순천공고, 한국항만물류고 등에서 수업까지 맡으면서 광양 엔지니어링의 대부로 불리는 것이다.

■ 또 다른 별명, 족구의 달인
 “이제는 사업 영역을 크게 확장하지 않고 오직 특수주문제작하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영업을 직접 하기에는 나이가 있어 오히려 사업을 축소해서 하는 겁니다. 하지만 후배 기술자들을 위해서 저의 사무실 및 작업실은 언제나 오픈해 놓고 있습니다.”

 오 대표는 이제는 후배 기술자들이 주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문의해온 업무도 후배 기술자에게 연결을 해주고 있다. 단지 그 후배들이 할 수 없다고 하면 그 일을 맡아서 하곤 한다.
“이제 가까운 것을 보기보다 멀리 보는 것을 배웁니다. 후배를 양성하는 것도 여기에 속하고 자신의 건강한 삶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 대표는 운동 습관을 잃지 않기 때문에 항상 활기가 가득 차 있는 모습이다. 그는 포항제철소 공무부서에서 근무할 때 축구선수로 활약을 했는데, 이 때문에 광양에 와서도 축구를 계속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조기축구회는 물론 광양시 족구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운동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지금도 1주일에 한 두 번씩 축구와 족구를 즐긴다고......

 “운동을 할 때만큼은 제가 아직 젊다는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있어 많이 뛰어야 하는 축구보다는 족구에 더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는 또 다른 별명이 생겼다. 바로 족구의 달인이다. 족구를 사랑하는 열정이 남들보다 커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의 사무실 한 켠에는 아직도 족구타격기가 설치돼 있다.

출처 > 광양만 신문. 홈 > 인물편

양재생 기자 ttext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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