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美와 파국으로 치닫는 사우디, 러·중과 군사협력까지 확대

[新중동천일야화] 美와 파국으로 치닫는 사우디, 러·중과 군사협력까지 확대

                                     조선일보. 발행일: 2022.05.02.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9609ecc0360ad0913cd6b23954c7d25d_1651657991_2601.jpg
 

 2차 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14일,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 정박한 미 군함 퀸시(USS Quincy) 함상

서 특이한 정상회담이 열렸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븐사우드 초대 

국왕 간의 만남이었다. 

 

 루스벨트가 얄타회담을 마치자마자 중동으로 달려가 이븐사우드를 만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석유 

때문이었다. 당시 사우디 동부 석유 매장량다른 국가의 유전들을 압도했다. 

 

 영국을 갈음하여 패권국 반열에 들어서는 미국은 석유가 절실했고 신생 왕국 사우디와 과감하게 손을 

잡았다. 이븐사우드는 미국에 석유를 안정적으로 제공해주는 대가로 안보를 약속받았다. 

 

 세상은 얄타회담에 주목했지만, 어쩌면 냉전 질서를 떠받쳤던 토대는 바로 퀸시 함상회담이었는지 모른

다. 두 나라는 무척 달랐다. 미국은 이민에 의해 세워진 기독교, 민주주의, 자본주의에 기반한 연방국가

였다. 반면 사우디는 부족 간 정복 전쟁을 통해 건립된 이슬람, 절대왕정, 석유에 의존하는 나라였다. 

 

 당시 서방은 신생 왕국 사우디를 불안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아라비아의 대표적 명문 가문인 하심가

와 달리 사우드가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인 와하비즘을 추종했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다른 두 나라가 

오래 함께할 수 있었던 요인석유, 그리고 공산주의라는 공통 위협이었다. 

 

 미국은 사우디 석유에 힘입어 자유 진영을 선도할 수 있었다. 사우디 역시 안팎의 위협 속에서도 미국의

안보 지원에 기대며 역내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딜레마도 있었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선도자 역할을 

자임해 온 미국 아니던가? 인권 탄압, 여성 억압, 언론 제약 등으로 악명 높은 이슬람 보수 왕정 사우디

를 품는다는 것은 분명 부담이었다. 

 

 시대를 갈음하는 변화의 조류를 피할 수는 없었다. 냉전의 해체는 사우디의 전략적 가치 하락을 의미

다. 셰일 혁명 등으로 석유 시장의 판도도 달라졌다. 대테러전 같은 이슈가 이어지며 관성적 우호관계는 

유지했지만 미국의 셈법은 점차 바뀌었다. 

 

 사우디에서도 무함마드 빈살만이 전격 등장, 권력의 세대교체를 추진하는 등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이 와중에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이천십팔년 사우디 출신의 워싱턴포스트 소속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가 살해당한 것이다.

 

 왕실에 비판적인 기자가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백주에 피살되자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유엔 조사단과 미 정보 당국은 빈살만 왕세자의 연루 가능성을 지목했다. 당시 막대한 사우디 무기 

판매에 고무되었던 트럼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선을 넘었음에도 미국의 지지를 확인한 빈살만은 

득의양양했었다. 

 

9609ecc0360ad0913cd6b23954c7d25d_1651658224_1844.jpg
 

 바이든은 달랐다. 언론인 살해를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관련 혐의를 받는 빈살만 측근들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홍콩 민주화 시위나 신장 위구르에서 중국이 보인 인권 탄압을 비판하며 민주주의 동맹을

규합해 온 바이든우방 사우디 왕실의 만행을 용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빈살만은 분노했다. 본래부터 인권 문제는 미국이 별반 타박한 적이 없었다. 바이든이 유별나게 군다 

싶었을 것이다. 사우디는 미국의 역린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러시아, 중국에 바짝 다가가 에너지는 물론 군사 협력까지 확대하고 있다.

 작년 8월 러시아와 군사 협력 협정을 통해 미국의 지지부진한 방공망 지원대체하는 러시아산 방공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올 초 사우디 칼리드 빈살만 국방차관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과의 회담에서 신장 위구르, 홍콩 및 

대만 문제에 있어서 중국을 지지하며 향후 안보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가 폭등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요청한 석유 증산 논의를 거부하면서 

양국 갈등은 절정에 달했다. 더 놀라운 일은 중국에 수출하는 사우디산 석유 대금의 위안화 결제 가능성

까지 밝혔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의 달러 패권에 정면 도전하는 일이다. 지난 4월 초, 사우디의 한 국영방송은 바이든의 노화와

건망증 그리고 치명적 실수를 비웃는 패러디까지 방송했다. 과거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물론 사우디가 미국과 완전히 절연하기란 쉽지 않다. 무기 운용, 정보 공유 등 사우디 안보 체계의 대미

의존도가 너무 높다. 사우디의 투자가들이 뉴욕 월스트리트와 런던 시티를 떠나 베이징과 모스크바로 옮

겨가는 그림도 비현실적이다. 

 

 빈살만은 내심 바이든 시대가 지나기만 바랄지 모른다. 그는 트럼프의 사위 쿠슈너가 설립한 회사에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20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자신의 의중을 드러냈다. 지금은 미국과 거리를 두지만 

트럼프 같은 지도자가 다시 나타난다면 언제든 함께하겠다는 신호다. 

 

 미국 내 여론밉든 곱든 일단 사우디를 품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원칙과 가치도 중요하지만

만에 하나 사우디가 러시아와 중국에 넘어가면 큰일이라는 위기감이 퍼져있다. 

 

9609ecc0360ad0913cd6b23954c7d25d_1651658414_8817.jpg
 

 심지어 카슈끄지와 함께 워싱턴포스트에서 일한 유명 언론인 파리드 자카리아도 바이든에게 빈살만과 

손잡으라 요구한다. 앞으로 수십 년 사우디를 통치할 빈살만을 미국 편에 두고 설득과 회유를 통해 점진

적 변화를 유도하자는 것이다. 

 

 바이든 으로서는 원칙만 고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쩌면 곧 극적 화해의 메시지를 주고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석유 시대의 종언과 함께 미국의 고립주의가 가속화될수록 77년 전 

퀸시 함상의 의기투합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중동에서 다시 피를 흘릴 가능성은 이제 거의 없다. 세상이 그새 많이 바뀌었다.

 

9609ecc0360ad0913cd6b23954c7d25d_1651658505_2028.jpg

0 Comments
Category

2024.5

State
  • 현재 접속자 74 명
  • 오늘 방문자 1,437 명
  • 어제 방문자 3,709 명
  • 최대 방문자 4,265 명
  • 전체 방문자 1,737,324 명
  • 전체 게시물 6,873 개
  • 전체 댓글수 174 개
  • 전체 회원수 881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