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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독일 허찌른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등공신은 양계장 출신 이중간첩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7) 독일 허찌른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등공신은 양계장 출신 이중간첩

                                       조선일보. 발행일: 2022.06.07.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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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숨은 영웅 '후안 푸홀 가르시아'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었다. 이 작전을 계기로 연합군은 2차 세계대전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었으나 그 과정에서 강력한 독일군의 저항에 부딪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피해를 최

소화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배후에서 활약한 유능한 이중간첩 후안 푸홀 가르시아(Juan Pujol 

García·1912~1988)의 공이 컸다. 

 

 1912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푸홀은 젊은 시절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1936년 스

페인 내전이 터졌을 때 그는 시골에서 닭을 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주의 정부군이든 프랑코 장군이

지휘하는 반군이든 관심이 없었으나 양쪽 군대에 차례로 징집되었고, 이때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도당 모 

두 극악한 학살을 자행하는 것을 목도했다. 이후 그는 독재 체제에 저항하기로 결심했다. 

 

 2차 대전이 일어나자 스페인은 중립을 표방했고, 그 결과 이 나라는 영국과 독일 스파이들이 상대방의 정

보를 얻기 위해 활동하는 무대가 되었다. 나치즘에 저항하는 스파이로 활동하고 싶었던 푸홀은 영국 대

사관을 찾아갔으나 전직 닭치기를 스파이로 쓸 의도가 없던 영국 측은 그를 거절했다. 

 

 실망한 그는 독자적으로 활동하기로 마음먹고는 나치 독일 정보 요원에 접근했다. 위험한 이중간첩의 

길을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자신이 프랑코 정부에서 외교 정보를 접하는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나치즘과 히틀러의 대의에 전적으로 공감하므로 독일을 위해 일하려 한다는 그의 말에 독일 정보 요원이 

속아 넘어갔다. 그들은 푸홀에게 알라릭(Alaric)이라는 암호명을 주고 영국으로 건너가서 정보원들을 포섭

하고 적 동향을 관찰하라고 지시했다. 

 

 푸홀은 영국으로 건너가는 대신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가서 공작금으로 작은 방을 얻은 다음 영국 지도,

관광 가이드 책자 등을 이용해 런던에서 활동하는 척 위장했다. 그러고는 뉴포트에 거주하는 포르투갈인

상인, 베네수엘라 출신 대학생, 리버풀에 살며 영국 해군 동향을 잘 알고 있는 독일계 영국인 등 가상의

첩보원들을 조작해 냈다. 

 

 독일 첩보 본부에서는 그가 보낸 가짜 정보들을 그대로 믿었다. 사실 독일군이 약간만 정신 차리면 그가 

가짜임을 알 수도 있었다. 영국에서 안 쓰는 미터법을 언급하는가 하면, 글래스고에 사는 자신의 첩보원은

포도주(맥주가 아니고) 1L만 주면 무엇이든 한다는 식의 헛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푸홀은 가짜 정보로 독일군을 농락하기 시작했다. 1942년 2월, 자신의 정보원 막시밀리언에게서 영국 

해군의 보급함 5척이 몰타로 향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알렸다. 지중해의 몰타섬은 영국군이 통제하

고 있는 전략 요충지로서 독일군이 이곳을 정복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던 터라, 영국군이 몰타 

방어를 위해 보급함을 보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독일군은 이 배들을 중간에 막기 위해 잠수함과 어뢰정 여러 척을 보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영국 선박은

나타나지 않았다. 거짓 정보 하나로 엄청난 인력과 물자를 헛된 곳에 낭비한 것이다. 그렇지만 독일군은 정보

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들이 내심 깔보고 있던 이탈리아군이 실수해서 배들을 놓쳤다고 판단했다. 

 

 조만간 나치에게 발각되지 않을까 두려움이 든 푸홀은 리스본 주재 미국 대사관을 찾아가서 자신의 정체

를 드러냈다. 이중간첩의 효용성을 알아본 미국 측은 그를 런던에서 활동하도록 주선했다. 1942년 4월에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정보부(MI5·Military Intelligence, Section 5)의 공식 직원이 되었다. 

 

 그는 이 부서에서 가르보(Garbo·당시 최고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에서 나온 이름이다)로 불리며 그곳 

동료들과 함께 일했다. 그는 새로운 정보원들을 구했다고 독일군에 보고했다. 이제 그가 만든 가상의 정보

원 네트워크는 영국을 넘어 미국과 캐나다까지 확장했다. 그는 자기가 만든 가짜 인물들의 성격과 직업, 

협조 이유, 이들 간 관계 등을 잘 꾸며나가면서 역정보 활동을 수행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보내는 정보를 독일군이 계속 믿게 만드는 것이다. 1942년 11월, 연합군이 아프리

카 북부 해안에 상륙하는 횃불 작전(Operation Torch)을 펴던 당시 그는 연합군 해군의 이동 상황에 대한 

아주 정확한 정보를 독일군 측에 넘겼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 정보를 넘겨서 사실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

하도록 했다. 독일군은 그에게 '정말로 소중한 정보지만 아쉽게도 너무 늦게 도착했다'며 위로했다. 이제 

그는 완전히 독일군의 신임을 얻었다. 이후 그는 독일군과 수백 번 교신을 이어갔다. 이것이 독일군 암호 

독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는 부수적 효과도 있었다. 

 

 푸홀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결정적 기여를 했다. 연합군에게 최대 위험 요소는 노르웨이에서 프랑스

까지 대서양 해안을 따라 독일군이 설치한 '대서양 방벽'이었다. 방공포, 지뢰, 기관총 부대 등을 배치하여 

해안선을 방어했고, 강력한 전차 부대도 주둔해 있었다. 

 

 히틀러는 연합군이 상륙작전을 편다면 그 지점은 파드칼레(Pas-de-Calais) 지역이 될 것이라고 보았고,

전차 부대도 이곳 중심으로 활동했다. 따라서 실제로는 노르망디 해안으로 상륙하면서 적에게는 파드칼

레로 상륙하는 것처럼 믿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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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군은 FUSAG(First United States Army Group)라는 가상의 부대를 만들었다. 고무로 만든 전차, 나

무로 만든 대포, 직물과 판자 등으로 만든 가짜 군 기지 등을 영국 남동부 켄트 지역에 설치했고, 독일군

정찰 비행기가 이것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가짜 부대가 파드칼레로 향하는 척하고, 인근 지역을 폭격

하기도 했다. 

 

 푸홀은 담대한 작전을 구상했다. 일단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넘겨준 다음, 그것은 

가짜 작전에 불과하고 본격적인 대규모 상륙 군대가 파드칼레로 갈 것이라는 최후의 역정보를 주어서

을 혼란에 빠지게 하자는 것이다. 아이젠하워 장군은 고심 끝에 상륙작전 초기 단계인 낙하산 부대 강습 이

후에 독일군에게 정보를 보낸다는 데에 찬성했다. 

 

 디데이(D-Day)인 6월 6일 오전 3시, 푸홀은 연합군이 노르망디 해안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무선을 보냈

다. 그런데 놀랍게도 독일군은 밤에 무전기를 닫아둔 상태였다. 몇 시간이 지나 상륙작전이 한참 진행 중일

가서야 독일군은 그의 무선을 확인했다. 푸홀은 극도로 분개한 어조로 이런 상태라면 자신의 업무를 중

단하겠다고 선포했다. 자신들의 실수로 결정적 정보를 놓친 것으로 판단한 독일군은 그에게 제발 일을 계속

해 달라고 읍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6월 8일 자정 무렵, 그는 최후의 거짓 정보를 독일로 송출했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현재 진행 중인 연

합군 공격은 대규모의 교란 작전이다. 이것은 우리의 시야를 완전히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적의 함정

다." 당시 노르망디 해안에 들이닥친 상륙군은 미끼이고 곧 더 큰 규모의 대군이 파드칼레로 상륙할 터

이니 그곳에 방어군을 집중 배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푸홀이 보낸 '첩보'는 히틀러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작전이 성공했다. 롬멜 장군이 이끄는 전차부대는 노르

망디 해안으로 향하다가 길을 돌려 파드칼레로 향했다. 상륙작전에 대한 대규모 반격이 불가능해진 중요

한 요인 중 하나다. 

 

 6월 말에 이르자 그는 더 이상 거짓 정보를 제공할 이유가 없어졌다. '알라릭 요원'은 영국 정보 당국에 

체포된 것으로 처리했고, 가까스로 석방된 다음 급히 런던을 떠나게 되었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그

는 종적을 감췄다. 탁월한 스페인 거짓말쟁이 한 명이 승전에 크나큰 도움을 주었다. 

 

[히틀러 철십자훈장 받고 몇달 뒤엔 영국 기사훈장… 戰後 베네수엘라로 은신]

 

 1944년 독일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이유로 히틀러는 '알라릭 요원'에게 철십자훈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몇 달 후에는 영국 정부가 연합군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이유로 '가르보 요원'에게 영제국 

사훈장을 수여했다. 이중간첩 후안 푸홀 가르시아는 나치와 연합군 양측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극소수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종전 이후 나치 잔당의 보복으로 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했다. 영국 정보부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앙골라로 보냈다. 공식적으로 그는 1949년 이 나라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위장한  종적을 감추었다. 영국의 국회의원 출신이며 나이절 웨스트(Nigel West)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던 루퍼트 앨러슨(Rupert William Allason)이 관심을 가지고 그의 행방을 추적했다. 

 

 10년 넘게 고생한 끝에 1984년에 가서야 가르보 요원의 정확한 본명을 알아냈다. 이후 바르셀로나의 

민 중 가르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모두에게 전화를 걸었으니, 이는 '서울 사는 박 서방'에게 모두 

전화 거나 다름없다. 마침내 푸홀의 조카를 찾아냈고, 이해 5월에 드디어 주인공을 만났다. 

 

 가르시아는 앙골라에서 말라리아로 죽은 것으로 위장한 후 베네수엘라에 가서 서점과 기념품 가게를 운

영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4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아 처음으로 노르망디 해안

을 방문한 그는 상륙작전 당시 숨진 병사들에게 조의를 표하고, 자신이 수만 명의 목숨을 구하는 데 일조

여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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