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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소년에서 배 만드는 조선기업인 꿈 이뤄

섬소년에서 배 만드는 조선기업인 꿈 이뤄 

                                              기자명, 김선정 기자 승인 2017.11.0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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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덕광그룹 이상석 회장 - 바다가 키워낸 당찬 섬소년

 

 한산도 섬소년에게 배는 당연한 삶이었다. 더구나 본섬 바깥 외도에 사는 섬소년은 노를 젓는 나룻배를 

자전거쯤으로 여기고 살았다.

 

 안개 자욱한 밤, 본섬에 이동극단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열세 살 아이들 예닐곱 명이 배를 타고 한산도로 

떠났다. 그러나 노를 저어도저어도 본섬은 가까워지지 않았다. 밤은 깊어가고 해안선을 따라 졸망졸망하던 

섬들이 모두 바닷 속에 가라앉았다. 망망한 바다만 끝없이 펼쳐졌다.

 

 작은 나룻배가 떠내려 온 이곳은 어딘지, 가야하는 방향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새벽인지 밤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서로 무서움에 옥죄는 마음을 숨기고 사력을 다해 부지런히 노를 저을 뿐. 새벽녘이 돼서야 

아이들은 어선에 구조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했을 것이 뻔 한 어른들은 되레 머리를 쥐어박으며 호통을 쳤다. 다시 한 번 아이들끼리 

배를 타고 나갔다간 요절을 내겠다는 협박을 들으며 아이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뒤로도 아이들은 자전거 타듯 배를 몰고 다녔다. 섬소년의 배포는 아마 그날 밤처럼 무서운 바다와 

정면으로 마주하며 커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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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했을 것이 뻔 한 어른들은 되레 머리를 쥐어박으며 호통을 쳤다. 

 다시 한 번 아이들끼리 배를 타고 나갔다간 요절을 내겠다는 협박을 들으며 아이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뒤로도 아이들은 자전거 타듯 배를 몰고 다녔다. 섬소년의 배포는 아마 그날 밤처럼 무서운 바다와 

정면으로 마주하며 커졌을 것이다.

 

 섬소년은 자라 배를 만드는 조선소 사장이 되었다. ‘덕광 그룹’의 이상석 대표다.

 

 중학교 1학년 때 통영으로 유학(?)을 나온 이 대표는 태권도 선수로 청소년기를 보냈 다. 그리고 스물두살 때 

기술훈련소에서 기 술을 익히고 부산에 있는 대동조선소에 입사했다.

 

 선박 내 탱크가 폭발해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같이 있던 동료 중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장애를 입었다. 

 이 대표는 자기도 ‘섬놈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향 땅에서 살고 싶어, 신아조선에 입사한 건 스물일곱 되던 해이다. 하지만 조직에 매여 있기에는 꿈이 

너무 컸고, 가슴이 뜨거웠다.

 

 이 대표는 안정적인 월급생활을 버리고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선박 안의 전기를 설비하는 ‘덕광 전기’였다. 

 여러 조선소의 하도급을 받아 일하는 협력업체였지만, 일을 맡았다 하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회사라는 

평판을 얻었다. 몇 년 안 돼 덕광전기는 덕광기업으로 자랐다. 그 분야에 실력을 인정받은 다음에는 다시 

선박제조에 필요한 다른 분야에 손을 대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30년 동안 외길을 걸어오면서 세운 회사가 4개다.

 

 덕광기업에 이어 DK엔지니어링, DK테크, 덕광중공업이다. 이 4개 회사가 제품을 만들어 조립하면 바로 완성된 배가 된다.

 

 어려울수록 필요한 건 장인 정신

 

 지난 2008년부터 조선업 경기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국내 굴지의 조선소들이 문을 닫고 수많은 협력업체들이 줄지어 도산했다.

 

 하지만 이대표의 회사들은 오히려 발을 넓히고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며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더욱 건실해지고 있다. 여태 조선 기자재만 만들다가 1년 전부터는 배를 직접 건조하기 시작했다. 어선이나 관공선, 연근해선박 등 중소형 선박을 만드는 것이다. 수출 계획도 가지고 있다.

 

 모두가 돌아선 조선업에서 살아남아, 이토록 당당하게 걷는 비결은 뭘까? 이 대표는 이 비결을 ‘장인정신’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만드는 배는 친환경선박입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LNG나 LPG 연료를 사용해 매연 없는 배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기에 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는 겁니다.” 30년 외길을 걸은 장인만이 큰소리치며 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업가는 사회에 환원할 책임 있어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 이대표는 통영시 태권도 협회장을 맡았다. 더 이상 승단할 필요가 없어 

4단에 머무르기는 했지만, 본인이 태권도 선수로 청소년시절을 보낸 태권도인이기에, 기업인의 사회 환원도 

태권도 후배들에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통영은 중소형 선박의 메카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든 곳도 통영 아닙니까? 저는 통영이 선박을 

만드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춘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통영 조선업,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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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정 기자 6444082@hanmail.net

                                    출처 : 한려투데이 (http://www.hanryeo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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