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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업체에 일감 절반 안 줬다고… 지자체들 "실태조사" 압박

지역업체에 일감 절반 안 줬다고… 지자체들 "실태조사" 압박 

                                                    조선일보. 2022-02-08. 김아사 기자. 장근욱 기자

 

[부실 부르는 건설현장] [下] 부실한 지역업체에 억지로 하도급 요구

 

 B 건설사는 지난해 비수도권 한 지역에서 아파트 공사를 수주한 뒤 지역 업체 C사에 상수도 공사 관련한 일감 일부를 하도급 줬다. 하지만 C사는 공사할 역량이 없는 '브로커 회사'였다. 뒷돈만 챙긴 뒤 실제 공사를 맡은 D사와 발주처를 연결해주는 역할만 했던 것이다.

 

 서류상으로 이 회사는 3개 전문건설면허를 갖고 있다고 신고했지만 회사에 상시적으로 근무하는 기술자가 한 명도 없었다. 이를 알게 된 건설사가 하도급 업체를 바꾸려 했더니 C사는 돌연 지역 언론에 '대형사의 갑질'로 문제 제기를 하겠다고 했다. B사 관계자는 "어쩔 수 없이 불법 재하도급을 알고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전국 주요 지자체들이 '지역 경제를 살린다'며 자기 지역 건설업체 챙기기에 나서면서, 건설사들은 전국 곳곳의 현장에서 "손발이 묶인 채 사업을 한다"고 토로한다. 지역 경제에 기여해야 하는 건 맞지만, 일부 지자체에서 지역 기업 참여 비율 목표치를 높인 뒤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공사 역량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업체 대신 검증이 제대로 안 된 지역 중소 건설사에 어쩔 수 없이 하도급을 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전국 모든 광역지자체가 자기 지역에 있는 공사 현장에 대해 '지역 업체 하도급 권장 비율'을 조례로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그 비율은 '50% 이상~70% 이상'에 달한다. 예를 들어 건설사가 1500억원 규모 공사를 따내 1000억원 규모 하도급을 준다면, 지역에 따라 많게는 700억 원 이상의 일감을 그 지역 업체에 나눠주는 걸 권고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이 비율이 경쟁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인천시는 지역 업체에 나눠주는 일감 비율을 최근 '70% 이상'에서 '80% 이내'로 바꾸는 걸 추진하기로 했다. 춘천시에서도 '50% 이상'에서 '70% 이상'으로 이 비율을 높이는 조례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제재도 한다. 대전의 경우 지역 공사 현장에서 지역 업체 참여율이 50% 이하로 내려가면 건설 현장에 대한 특별 점검과 실태 조사를 벌인다. 대구시는 공사 때 지역 업체 참여율을 70% 이상으로 높인다는 계획서를 내게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본사 경영진에게 알리거나 면담 등을 요구한다고 한다.

 

 지자체들은 "지역 업체 참여 비율은 권고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건설사 사이에선 "인·허가 권한을 쥔 지자체가 소개하는 지역 업체를 모르는 척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지자체에 밉보이면 각종 점검이나 검사 등이 시작되면서 공사를 제때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작년 한 재건축 현장에서 공사를 따낸 E사는 착공 승인을 받으려고 수차례 신청을 했지만 줄줄이 반려당했다. 일부 하도급 업체를 그 지역 업체로 바꾼 뒤에야 승인을 받았다고 했다.

 

 지역 업체를 쓰라는 지자체 입김이 강해지면서 건설 현장에는 역량이 떨어지는 업체가 들어오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의 한 건설 현장에선 10억원 규모 공사를 하도급 줬더니 지역 건설사가 인건비와 원자재 값이 올랐다며 공사비를 2배로 올려주지 않으면 공사를 못 하겠다고 버티는 사례도 있었다. 이 업체에 하도급을 준 건설사 관계자는 "원자재 값 등 목록을 요구하니 지방의 유력 인사와 끈이 있는 사람을 데리고 오더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지역 경제를 살리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정도가 심해질 경우 부실 공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역량이 부족한 기업이 지역 업체란 이유로 공사에 참여하거나 웃돈만 챙긴 뒤 불법 재하도급을 줘서 전체 공사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전영준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원은 "기업별로 기술이나 전공 분야가 다 다른데 그 지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사에 참여시키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며 "지역 업체 참여 비율을 현실에 부합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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