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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보다 더 흥미진진한 조선 사내들의 표류기를 아십니까?

'하멜'보다 더 흥미진진한 조선 사내들의 표류기를 아십니까? 

                              기고자: 김동규 서울대 신경외과학 명예교수· '마음 놓고 뀌는 방귀' 저자

                                                                             조선일보 2022-02-12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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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의 나는 꼰대로소이다] 제주 여행길에 만난 '녹담거사'

                                       민초들 진취적 사고가 준 교훈

 

 생각만 해도 징글징글한 코로나 사태의 짜증을 삭이려고 지난가을 제주도에 다녀왔다. 정방, 천지연, 천제연

폭포 그리고 외돌 개와 만나 반가웠고, 꼭 40년 전 기념사진을 찍었던 만장굴 거북바위에서 짜릿했던 허니문

의 단꿈을 더듬었다. 섭지코지의 탁 트인 바다, '쇠소깍'과 '큰엉해안경승지'도 흔히 대하기 어려운 빼어난 

경치였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들, '이타미 준'의 작품인 물에 떠 있는 방주교회, '구사마 야요이'의 호박에 눈이 

호사를 누렸고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는 오름을 깊이 있게 담아낸 작품에 숙연했다. 유민 미술관에서 

바라본 성산 일출봉이 압권이었고 해변 카페에서 바다 내음과 커피 향에 취했다. 때마침 이중섭 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감상하고 미술관 옥상에서 70년 만에 서귀포로 귀환한 이중섭의 풍경화 

'섭섬이 보이는 풍경' 속 섭섬을 넋 놓고 바라보기도 했다. 

 

 지난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엉또폭포'의 장관을 만난 행운이었다. 출발 당일 새벽까지 태풍 '찬투'가 폭

우를 몰고 와 평범한 절벽이 웅장한 폭포로 변신했다. 김포공항으로 향할 때 세찬 비바람에 비행기가 예정대

로 뜰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에 태풍을 원망했었는데 불청객 '찬투'가 뜻밖의 귀한 선물을 주고 갔다. 

 

 일정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가을 햇살을 받아 나른하고 목도 컬컬해서 차를 세웠는데 사람 키의 서너 배쯤

되는 화강암 비석이 앞을 가로막았다. '녹담거사 장한철선생 표해기적비'라고 쓰였는데 '장한철'은 못 듣던

인물이다. 비석의 규모로 볼 때 꽤 알려진 인사일 텐데 나이를 헛먹은 영감태기의 과문 탓인가 보다. 

 

 향긋한 커피로 목을 축인 후 '차귀도'와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관'을 둘러보고 '성 이시돌목장'의 

초원에서 진한 우유 맛의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한가한 오후를 보냈다. 

 

 숙소로 돌아와 '장한철'을 검색했다. 영조 시대 인물로 과거 길에 나섰다 배가 폭풍우에 휩쓸려 류큐

(琉球, 오키나와)에 표류했던 경험을 '표해록'으로 남긴 제주 선비였다. 네덜란드 사람 '하멜'의 제주 

표류기는 귀에 익었는데 제주 사람의 외국 표류는 생소했다. 

 

 조선인의 표류기라! 당시에도 숱하게 뱃길을 오갔으니 충분히 있음 직한데 왜 그런 책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지? 인터넷에서 성종 때 벼슬아치 '최부'의 '표해록', 그리고 순조 때 홍어 장수 '문순득'의 구술을 

흑산도에서 귀양 살던 손암 정약전이 정리한 '표해시말' 등을 더 찾았다. 궁금증이 발동해서 여행을 끝내고

서둘러 책을 구해서 뻑뻑한 눈을 비비며 읽었다. 

 

 조선에 알려지지 않았던 여송(呂宋, 필리핀 루손섬)과 마카오를 비롯한 중국을 두루 구경한 문순득과 

정약전의 만남은 웬만한 드라마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영화 '자산어보'에서 일부가 소개됨). 

 

 망망대해 속 극한 상황을 기록이나 기억 속에 남긴 조선인의 관찰력과 치밀한 성격에 새삼 놀랐다. 

 특히 뛰어난 통찰력과 기억력의 문순득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는데 글을 모르는 장돌뱅이지만 명석

한 두뇌, 깨어 있는 자세, 식을 줄 모르는 호기심의 소유자가 확실했다. 문순득의 체험이 강진의 정약용의

학문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문순득이 전해준 여송의 화폐 제도를 근거로 '경세유

표'에서 화폐 개혁안을 제안했다니….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조선이 문순득과 같은 민초의 진취적인 사고에 귀 기울이는 열린 자세였다면 

훗날 경술국치의 치욕은 없지 않았을까. 제주에 표류해 온 필리핀 선원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몰라 

쩔쩔매던 관리를 대신해 표류했을 때 익힌 필리핀어를 구사해 난제를 단숨에 해결한 문순득의 활약을 

보며 쾌재를 불렀다. 

 

 낙담한 동료의 사기를 북돋우며 함께 난관을 헤쳐 가는 장한철도 대단한 사람이다. 류큐의 무인도에서 

안남(安南·베트남)의 무역선에 구출됐으나 그들에게 구원(舊怨)이 있는(과거 안남의 태자를 제주 사람이

였다고 함) 제주 사람이란 사실이 들통 나면서 다시 바다로 쫓겨나는 등 숨 막히는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구사일생으로 상륙한 섬에서 맘에 둔 나 어린 과부를 꼬드겨 하룻밤 로맨스를 펼치는 녹담거사의 주책

에 실소했고, 표류로 만신창이 된 몸과 마음에도 곧바로 한양으로 과거 보러 떠나는 기개에 감탄했다. 

 

 최부는 전라도 나주 사람으로 부임지 제주도에서 부친상의 비보를 접하고 다급하게 배를 띄웠다가 

풍랑을 만나 중국까지 떠밀려갔다. 왜구로 몰려 죽음을 눈앞에 뒀으나 기지와 당당함으로 위기를 극복

하고 귀국해 기행문을 남겼다. 

 

 흥미롭게 읽은 책을 덮으며 하늘 천(天), 따 지(地)만을 외우면서 주위를 모조리 오랑캐라고 깔본 선조들

의 '소중화주의'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국민을 위한 길이라면 손암이나 다산처럼 출처를 따지지 않고 

실용적인 문물을 받아들이고, 바닷길을 활짝 열어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하려는 노력을 왜 못 했을

까.  

 

 세상에 글자는 한자(漢字)밖에, 외국이라곤 중국, 왜(倭·일본)와 류큐 밖에 모르는 위인들이 나라를 

다스렸으니 어찌 바른 길로 백성을 인도할 수 있었겠는가.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떠난 여행에서 뜻밖의 비석을 만나 모르던 역사의 한 장면을 간접 경험했다. 

 흥미진진한 표류기의 행간에서 읽히는 위정자의 부족했던 안목을 접하며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이 

머릿속을 맴돌아 묵직한 돌덩이가 가슴 한편을 짓누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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