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별 동문회


 

우리의 마음의 혁명은 과연 누가 일으키는가 !?

김종석 0 3011 0 0

7회 선배님들이 올려 주시고 보내 주신 글을 읽고 나서....

건축과 7회 풍산 김명흠 선배님 글과 7회 회보 249호 12년3월15일자 1면에 토목과
노인수 선배님이 올려 주신 "선현을 만나다!"라는 글을 읽고 나서 글을 올립니다! 


처칠의 유머 감각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정계은퇴
이후 80세를
넘겨
한 파티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부인이 반가움을 표시하면서
그에게 이런 짓궂은 질문을 했습니다.

"어머, 총리님. 남대문이 열렸어요.
어떻게 해결하실거죠"


그러자 처칠은 이렇게 조크를 통해서
위기를 모면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고 합니다.

"굳이 해결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이미 '죽은 새'는 새장 문이 열렸다고

밖으로 나올 수가 없으니까요"


'영국인이 뽑은 가장 위대한 영국인'으로
처칠을 손꼽는 것도 그의 여유로운
마음에서 묻어나는 탁월한 유머감각도
일조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하원의원에 처음 출마했을 때
상대 후보가 그를 맹렬하게 공격했습니다.
'늦잠자는 게으른 사람'이라고...


그러자 처칠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이렇게 응수함으로
그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이로
당선된 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

"아마도 나처럼 예쁜 마누라를 데리고 산다면

당신들도 일찍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곳에 올려 놓았던 동그란 형태의 성동공고 마크를 삭제한 후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김명흠 선배님이 올려 주신 "처칠의 유머 감각"도 그대로 올려 놓기로 했다.

선배님의 허락도 없이 올려 주신 글을 이유가 있어서 몇일 전에 재편집하여 고히 잘 간직하고 있었다. 혹시 마음이 상하셨더라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유는 선배님께서 아래에 올려 주신 내용을 보고 12년 후배로써 그간 살아오면서 대한민국을 보고 느낀 점을 간략하게라도 나의 마음을 피력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7회 249호 회보를 스캔을 떠서 성공 홈피에 올려 놓으면서 토목과 노인수 선배님의 글을 접하게 되었는데 몇일 전서부터 마음 먹은대로 오늘 (3월30일 금요일), 이 글을 마무리 해 보고 싶었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말이다.

7회 선배님들의 회보에는 여러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하나는 선배님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선배님들이 70여생이 넘도록 살아오시면서 보고 느낀 여러가지 마음과 생각들을 교훈이 되는 자료들을 인용하여 표현해 주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선배님들이 70여생이 넘도록 7회 동문님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사무실도 관리하고 우정과 애정 그리고 슬픔을 같이 나누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249회에 이르는 회보를 제작하셨는데 7회 선배님들의 온갖 정성이 이 4장-8면의 회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7회 249호 회보 노인수 선배님이 올려 주신 제1면 글은 동문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을 하지 않고 그대로 올려놓았고 제2면은 주요 골자만 편집을 하여 올려놓았다.

회보 제1면에는 29살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강직한 성격과 조정 안에서의 정적에 의하여 33세 (1547년) 3월에 순천으로 유배되나 곧이어 양재역벽 사건으로 연류되어 윤9월 진도로 이배되어 19년이란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내면서 어버이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는 불효를 자행한 자신의 삶에 대한 피를 토하는 듯한 시귀가 그리고 249호 회보 제2면에도 고사를 인용하여 49세가 되어서야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내용과 기러기가 그림자만 짝하고 있는 모래사장의 기러기를 묘사하여 성 밖 바닷가에서 홀로 생활하는 자신의 고독감을 표현하였고, 소무가 북쪽 변방의 흉노족에게 사신으로 갔다가 인질로 붙잡혀서 19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고사를 인용하여 자신이 지금 50세가 되었으며 유배된지 19년이 됨을 암시하였다.

실로 피 끓는 청춘의 많은 시간을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정적에 의해 유배라는 이름 아래 사나이 포부도 펴보지 못한채 19년이라는 많고 긴 시간을 외로이 보냈다는 것이다.

회보 제2면은 노인수 선배님께서 글을 올리시면서 느끼신 점만 편집하여 올려놓았다.

아래의 노인수 선배님 글 속에는 풍산 김명흠 선배님께서 2012년3월12일 "멋진 Leader가 부러운 아침"이라는 제목으로 성공홈페이지 기수별 난에 올려 주셨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1. 노인수 선배님의 글 속에도 잘 표현되어 있지만 여당과 야당이라는 이름 아래 지금의 정치현실 속에서도 몇년 전에 세웠던 나라의 큰 프로젝트를 아무런 이유 없이 지금에 와서 반대를 해야하는지 매우 슬플뿐이다. 필자는 이렇게 해석해 보고 싶다. 칭찬에 매우 인색한 국민, 고로 자기의 생각과 부합되지 않거나 정당이 아니면 무조건 반대를 하여야 하는 나라, 언제나 이 고질병을 고쳐야 하는지 앞이 깜깜할 뿐이다. 세계 열강 속 틈바구니 속에 끼여서 그것도 두동강이 난채로 분열되어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현실은 뒤로 한채 자기와 당이라고 하는 현재의 작은 나무가지만 생각하는 정치인들!!!! 수 백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당파 싸움과 지금의 여당과 야당이라는 정치현실이 과연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대한민국 현실에는 이러한 정치 형태가 맞지 않을런지도 모른다고 오늘도 생각해 봅니다!! 

무엇을 버려도 버려야 될것 같은 생각이 이 시간에도 필자의 머리를 맴돌고 있다.

2. 풍산 김명흠 선배님이 한탄 하셨듯이 어제의 대통령이 법의 심판대 앞으로 불려나가 과거의 잘못을 하나하나 파혜쳐 가며 국민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수모를 당해야 하나 하고 오늘도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본다! 선배님의 말씀과 같이 모든 국민들의 추앙을 받으며 검소하고 본 받는 삶을 영위해 나가지 못할 망정 독재라는 미명아래 외국이나 외지로 추방을 당해야하고 심지어는 자기 밑에 있었던 부하에게 저격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고 여러가지 이유로하여 대통령이라는 그 높고 높은 자리에 있다가 평범한 한 시민으로 돌아와서는 자기의 삶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이 너무나도 슬프고 슬플뿐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어느 대통령이 또 이와 같은 전철을 밟지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이 슬픈 정치 현실은 끝이날 것인가 !!!!???

3. 아래 김몀흠 선배님 글 속에는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놓으시고는 말미에는 "성공인! 여러분! 우리들만이라도 참으로 정말 멋진 Leader로 살아야 되겠습네다!" "처칠의 유머를 보시고 잠시 웃으십시요!"라는 말씀으로 글의 끝맺음을 하셨다. 한탄스러우시면서도 대한민국과 성공인의 앞날을 위해서는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어 "멋진 Leader로 재 탄생하여 대한민국과 성공인의 앞날에 일익을 담당하는 국민이 되라!"는 성공인의 교훈 "홍익인간"이라는 말과 상통되는 일침으로 해석되어진다.  

 
우리가 뽑은 우리의 대통령을
심한 막말로 서슴없이 욕하는나라

대통령 자리만 물러나면 심판대 위로 불려나가

갖은 모욕과 창피을 당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국민의 돈으로 초호화 생활을 하면서!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어 우리가 이렇게 되여갈까요?

참으로 부끄럽고 세계 이웃 보기가 민망스럽습니다.

퇴임 후의 여러나라 국가 원수들의 검소하고

평민으로 살아가는 남의 나라 지도자를

보면 참으로 부럽습네다.

언제나 우리도 저렇게!

몇일 후면 또 선거라고 국내는 한참 시끌버끌 합니다만,

그놈이 그놈으로 보이니 선거할 생각도 들지않으니

제가 생각해도 스스로 부끄러울 뿐입네다!

성공인 여러분!

우리들만이라도 참으로 멋진 리더로 살아야 되겠습네다!

"처칠의 유머를 보시고 잠시 웃으십시요!

ㅎㅎㅎㅎ

4. 절약하고 양보하고 허영심을 버리는 국민으로 재 탄생해 보자는 말이다!!!

우리가 어려서 늘 들어왔던 "2차대전에 패한 독일 국민들은 성냥개피도 3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켜지를 않는다!"고 하는 말은 이제는 거의 어디가서라도 들어볼 수가 없다. 지금은 성냥 대신 일회용 라이타 시대라 그런 것인가??? 의정부에서 볼일을 보고 밤 10시 넘어 가끔가다 동부간선도로를 이용하여 청량리 집까지 자가용을 몰고 오는 때가 있는데, 서울 시내로 가는 쪽은 차들이 막히는 일이 거의 없는데 서울 시내에서 의정부 쪽으로 가는 동부간선도로에는 그 늦은 밤에도 도로가 거의 막혀 차들이 거북이 걸음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어디를 이 늦은 밤에들 다녀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낮도 아닌 밤에 그 많은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그 무엇인가를 생각케 하는 일인것 만은 틀림 없는것 같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때문에 지구가 온통 몸살을 앓고 있어서 여기저기서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고 있자면 또한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 현실을 생각하고 있자면 차량 10부제를 강제로라도 실행하거나 전기자동차로 차량을 바꾸는 일이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제는 "전기가 남아 돌아 이북에 도와주자!"는 말은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5. 본인 김종석이 자유게시판 75번에 올려 놓았던 일본 극우단체들의 "김태희를 일본에서 추방하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발췌하여 올려놓았던 기사입니다! 

http://vod.sbs.co.kr/player/vod_player.jsp?vodid=V0000010101&order=DESC&cPage=1&filename=cu0015f0083900&mode=

viewer_orgimage.jsp?image_id=I0001379142 

일제 36년 동안 많은 대한민국 국민과 독립투사들이 얼마나 핍박과 설움을 받고 목숨을 잃어갔는지는 여기 이 공간에 쓰지 않아도 대한민국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우리는 해방이 되고 5년 뒤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고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인류 역사상 핵 폭탄이라는 초유의 큰 폭탄을 얻어 맞고 50년 초 도시바 등 일본 굴지의 회사들이 도산의 지경까지 빠졌다가 한반도 전쟁이라는 "특수경기"를 맞아 지금에 이르러서는 경제대국이라는 이름을 얻게까지 되었습니다! 1850년 경 일본은 외국의 문물을 받아드려 철 군함을 만들고 어학과 모든 문화를 개방하고 있었던 시절에 이씨 조선은 왜세에 맞서 쇄국정치를 펼치고 있었고 얼마 뒤에 "3일 천하"라는 정변을 만나나 성공하지 못하고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싸움을 하는 사이 그만 1905년에는 한일합방이라는 대한민국 국치의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로부터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 독립운동을 하여야 했고 1961년 혁명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1962년10월서부터 (1962년10월20일과 11월12일 두차례에 걸친 김종필과 오히라 사이의 회담에서) 일본에 일제 36년 동안의 정신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에서 피해보상을 하는 "차관 {대일청구권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협정"이라 약칭)이 1965년 6월22일에 조인되고 같은 해 12월18일에 발효됨으로써 국교도 정상화되었다.}"을 구하게 되었지요. 우리는 우리끼리 싸우는 동안 일본은 1950년 한반도 전쟁이라는 "특수경기"를 만나 경제적인 부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고 지금 현재도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진실을 왜곡한채 학생들과 극우단체들에게 거짓된 역사적인 사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실로 독도가 예전에 일본놈들 땅이었다고 해도 감히 대한민국의 국민들(역사적으로는 백제의 후손들이 일본에 정착하여 왕가를 이루었다는 설도 있다!)을 생각해서라도 망발이나 망언은 삼가해야 할터인데...SBS가 김태희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극우단체들이 일장기를 들고 김태희 타도를 외치는 현장을 촬영하자 - 대한민국에서는 일본 관광객이나 일본사람들에게 "과거에 우리를 핍박하고 목숨을 빼았아 갔으니 이 자리에서 죽이자!"라고 과격하게 행동하는 현장을 목격해 보지도 못했으나 - 일본의 극우단체들의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 의외였다! "저 촬영하는 놈이 조센징이다. 저놈을 죽여야 한다!" 이것이 SBS에서 김태희 퇴출 사건 때 촬영해 온 동영상 속에 있는 생생한 기록 영상 속에 한장면 입니다! 그렇게도 대한민국 사람들을 죽이고 싶었던가요? 현재 한국 국적을 바꾸지 않고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 한국인이 40만 정도 된다고 방송에서 들은 것 같습니다! 그들이 대동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무고한 대한민국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가 일본의 산업현장과 전쟁터의 희생자로 만든 사람만도 그 얼마일턴데 - 방송에서는 일본 사람들은 "위안부나 강제징용자들 스스로가 그 길을 원했고 또한 일본 군사 정부에서는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불했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것이다!" -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일본 사람들이 되었어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나에게는 대한민국 사람들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하는 일본인 3세도 많다고 한다. 극우 단체들이 왜 일본에 있는 한국 사람들을 미워하느냐에 대해 SBS에서 극우단체들의 현수막을 촬영한 장면이 나온다. 타 외국인에 비해 면책 특권이 많다 - 즉 도둑질을 하다 들키면 외국인들은 추방을 당하는데 조선인에게만은 추방이 아닌 가벼운 벌금이나 형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 그리고 현재 일본인들에 비해 조선 사람들의 열악한 경제 사정 때문에 일본 국민들의 혈세가 "조센징"에게 많이 투자되어야 하고 그로 인해 세금이나 여러가지 경제적인 면에서 일본 사람들의 혈세를 축내는 바보 같은 사람 (빠가야로 민족?)들 집단이기 때문에 죽이거나 추방해야 된다는 것이 일본 극우단체들의 현 실정입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데 누굴 죽여야 한단 말입니까???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은 대한민국 내의 극우파나 대한민국을 몹씨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어디에서도 방송상 "일본인을 때려 죽이자!"고 하는 장면을 목격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극우가 되었든 극좌가 되었든 1905년 한일합방이라는 수모를 대한민국에 안겨 주고도 그것도 모잘라서 100여년이 더 지난 2012년 현재에도 "열심히 조선 사람들을 미워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일본인들이 흥선대원군 시절 이씨 조선을 건드리지만 않았으면 우리끼리 치고 받고 하다가 코가 깨지는 일은 있었어도 나라가 두 동강이 나는 비극적인 현실은 일어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하나의 국가로 잘 뭉쳐있었던 조선에 들어와서 전 근대국가를 만들어 주니 어쩌니 하면서 그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한반도 내에 철도를 건설하고 공장을 짓고 여러가지 일을 꾸미는 동안 대한민국 내에 있는 많은 피 끓는 조선 사람들은 창씨개명을 하였고 일본군 군사가 되어 대동아 전쟁에 앞장을 서서 목숨을 바쳐야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대한민국에 남은 슬픈 현실은 매국노라는 이름과 독립군이라는 이름으로 나뉘게 되었고 이 또한 이러한 이름을 만들게 된 것도 우리 민족의 국민성에도 달려있었겠지만 전적으로 너의 일본놈들이 그 거만한 작태로 인하여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990번의 외침을 당했어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 남았고 또한 그렇게 외침을 당했어도 단 한번도 이웃 나라를 침범해 보지 않았던 동방의 예의지국에 너희가 분단의 씨를 뿌려 놓게되었다는 것이 이제 환갑을 맞이한 필자의 지론이다. 몇년 전에 일어난 쓰나미 사건으로 인하여 2만~3만명의 일본 국민들이 희생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이웃의 슬픈 현실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어 "원전 기술자와 생필품을 보내겠다!"고 하였더니 의외의 반응이었다. "생필품과 원전 기술자의 품질과 수준이 어떻다!"느니 해가며 순수하게 도움을 받아들여 주질 않았다. 조센징의 기술자와 생필품이라 일본인들의 자존심에 금이 갔었나 보다! 여기에서 이 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 지역을 휩쓸간지 몇년이 지났는데도 희생자들의 동의 없이는 그곳의 물건 (희생자들이 소지하고 있었던 사유재산)들은 정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본다! 그렇게 자기 국민들 사유재산에 대해서는 법과 질서를 따지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동아 전쟁을 일으켜서 그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목숨을 파리 보다 못하게 취급을 하여 죽였는지....오늘이라도 일본 국민들은 크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 조선 사람들이 크게 깨달아야 할 것은 하루라도 빨리 손잡고 대동단결하여 일본인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경제와 국방면에서 뒤떨어짐 없이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평화스러운 날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6. 우리가 만든 삶의 자리는 근현대사의 주체였던 성공인들의 땀이다.

성동공고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104번) 2112년3월30일 21시24분에 31회 정밀기계과 (추측) 정영신 후배가 글 후미에 "기능인이 기술자로, 기술인이 나라의 요소요소에서 반드시 필요한 역사의 주체로 일어 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 성동공업고등학교의 근현대사에서 뿌려진 땀방울의 결과이다. 늘 자랑스럽고, 고마운 나의 모교 성동공업(기계)고등학교!!! 스승님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50평생을 기능인으로 살아오면서 모교에 대한 그리움과 그리고 스승님에 대한 고마움의 글을 올려주었다. 실로 오래간만에 후배님의 글을 자유게시판에서 보게된 것이다! 몇일 전에는 새로운 홈페이지 검색난으로 들어가서 이름을 입력하고 동문을 찾을려고 하였더니 나오질 않는다. 이유는 현재 새로운 홈페이지에 등록되어 있는 분들만 검색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 새로운 홈페이지에 가입한 동문님들이 200여분 밖에 되지를 않는다고 한다. 동문님들이 예전서부터 운영하고 있었던 Cafe는 현재 자료도 많고 햇수도 꽤 오래된 것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지금의 성동공고 홈페이지는 과거의 자료는 실려있지를 않기 때문에 러 동문님들이 적극적으로 동참을하여 새로운 홈페이지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 주변의 동문님들 이야기나 정영신 후배님 처럼 그동안 살아 오면서 느꼈던 이야기 등 또한 지부나 동호회에서 느끼고 재미있었던 이야기 등을 성동공고 동문님들을 위하여 바쁘신 일상생활 속에서도 시간을 할애하여 올려주시고 가입도 많이하여 주시기를 이난을 빌어 부탁드려 보는 바 입니다! 이것도 동문님들을 위한 마음의 혁명 아닐까요!!!! 동문님들의 많은 동참 부탁드려 보겠습니다!  

항상 좋은 글을 올려주시고 회보를 제작해 보내 주시는

7회 선배님들에게 이 난을 빌어 감사의 인사말씀 올립니다!

 

0 Comments
Category

2024.11

State
  • 현재 접속자 252 명
  • 오늘 방문자 2,203 명
  • 어제 방문자 5,092 명
  • 최대 방문자 9,829 명
  • 전체 방문자 2,661,127 명
  • 전체 게시물 7,028 개
  • 전체 댓글수 174 개
  • 전체 회원수 879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