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별 동문회


 

언제나왼손엔 책을

김명흠 1 3253 0 0

 

 

철학자 소크라데스는

감옥 안에서 잠시후에 있을 처형을 앞둔 시간에

옆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노래를 부르던 사람은 의아해서 노래를 배워 뭘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 하기를 " 나는 한가지라도 더 알고서 죽고 십소이다"

 

There is story that while Socrates was in prisIon awaiting his death,

he heard a man sing song .

Socrates begged the singer to teach it to him.

When asked why,

 the great philosopher replied, ' l want to die knowing one more thing."

 

연녕이 많아질수로 정신건강,침해예방을 위해서라도.

Computer는 물론이고 아무거나 책을읽는습관을 갖이는게

세계유명회사의 보약보담 훨씬낳으리라 믿고있습네다

동문여러분!공부는 학교에서만하는게 아니지않습네까?

무엇이든 우리네삶의지혜를 얻을수만있다면...

호주머니에 들어갈만한 책한권 넣고다니시면서 전철안에서 잠시기다리는시간에 읽으시라요

시간도잘가고 건강에도 좋을테니말입네다

건축과7회 풍산

 

사진으로보는 6:25전쟁과 이승만대통령의 책중일부를

소개합네다 

6·25 전쟁 전후 李承晩(이승만) 대통령의 활동을 담은 사진집 《사진으로 보는 6·25전쟁과 이승만 대통령》(2011년 12월30일 발간)이 나왔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와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의 공동 작업으로 탄생한 이 사진집에는 6·25 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戰時(전시)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진자료들이 실려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現 청와대) 시절부터 보관하고 있던 것을 그의 死後(사후)에 아들 이인수 박사가 연세대학교 이승만 연구원에 기증했다.

어린 노력 등이 담겨 있다. 60여 년 전 이승만 대통령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이룩했는지, 그 결과 대한민국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제1부 <대한민국 건국과 군사외교>에서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건국 과정을 담고 있다. 정부수립 기념식에 참석한 맥아더 원수의 부부 사진이나 6·25 이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 등은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진들이다. 태평양동맹을 협의하기 위해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訪韓(방한)해 진해를 방문한 자유중국 蔣介石(장개석) 총통의 사진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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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원수 - 왼쪽은 하지장군(1948.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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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개석 총통의 진해 방문 기념사진(1949. 8. 7)



제2부 <6·25전쟁 발발 이후 전쟁지도 및 군사외교>에서는 아이젠하워 美 대통령 당선자의 訪韓, 戰線(전선) 부대 순시 장면,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국군의 전력증강을 위해 부대를 창설하고 이를 격려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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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당선자의 일선시찰(1952.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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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태극기를 증정받은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당선자(1952. 12)- 뒷편 오른쪽에서
첫번째가 벤플리트 미 제8군 사령관, 두 번째가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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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엽 제6군단장의 안내로 전선을 시찰 중인 멘데레스(Menderes) 터키 수상(195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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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무역 및 우호 사절단의 경무대 예방(1956.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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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전선 제1군단 지역의 촌로들을 위무하는 이승만 대통령(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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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를 맞은 해방동이들의 경무대 예방(1955. 8. 15)



제3부 <전후 전력증강 및 추모 사업>에서는 제2의 6·25를 방지하고자 국군 현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의 再侵(재침)에 대비해 3군작전을 통합하고 연합참모본부(합동참모본부 전신)를 신설하는 한편, 육·해·공군 및 해병대를 개편·증편하여 자주방위를 위한 기초를 닦았다. 전후 전몰용사 및 6·25전쟁의 교훈을 되새기기 위해 격전지 곳곳에 戰績碑(전적비)를 건립하도록 했는데, 휴전 후 전후방 곳곳에 남아 있는 전적비 글씨의 대부분은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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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군 기동훈련을 참관하는 이승만 대통령(1957.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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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군단 창설 1주년 기념식 후 휘호하는 이승만 대통령(1954. 7)
 


제4부 <전후 반공국가와의 정상외교>에서는 6·25전쟁 이후 태평양지역 反共(반공) 국가인 미국(닉슨 부통령과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자유중국(장개석 총통), 베트남(고딘 디엠 대통령) 정상들과의 안보 및 군사외교활동을 담고 있다. 정상회담의 전반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사료적 가치가 큰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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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미국 부통령 방한(195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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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초청 국빈 방문 중 미 의회에서 연설 중인 이승만 대통령(1954.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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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초청 국빈 방문 중 미국 뉴욕에서 카퍼레이드 중인
이승만 대통령(195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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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중국 방문 중 연설문을 낭독하는 이승만 대통령(1953. 11)



제5부 <전후 복구 및 대민 구호>에서는 전쟁의 폐허 위에서 복구 사업을 진행시켜 나가는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군이 교량, 학교 등을 복구·재건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전후 복구를 위해 재정적·물질적으로 후원해준 미국 및 유엔의 구호담당자들과의 친선외교 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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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 수송작전의 공로로 훈장을 수여받은 헤스(Hess) 대령(1951.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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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의 의류 기증식(1957)




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책 서두의 글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6·25전쟁에 대한 노력과 의지에 대해, ‘40년간 독립운동을 통해 단련된 평정심을 잃지 않고, 국가지도자로서 취해야 될 조치를 의연하게 처리했다’고 평가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 초기 위급한 상황에서 다음 4가지의 조치를 내렸다. 첫째,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이 세계대전의 빌미를 제공하는 場(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한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총력전을 펼치겠다, 셋째, 북한의 불법남침을 남북통일의 절호의 기회로 삼겠다, 이 위기를 타개하고 북진통일을 위해서는 미국과 유엔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한반도의 통일을 원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에 대한 의지는 그의 전쟁 목표로 정립되어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이 대통령은 이를 위해 국군 작전지휘권을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양하며 미국 및 유엔에 적극적인 협조를 보냈다. 통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양보할 의사가 있었던 것이다. 이 대통령에게는 오로지 북진통일에 의한 남북통일만이 존재했다.

“이승만 박사는 현 세기가 낳은 한국 최대의 정치가 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제1급의 애국자·혁명자·지도자”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李應俊) 장군>

“전쟁의 위기를 이승만이 아닌 어떠한 영도자 아래서 맞이했다고 해도 그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 <국군 최초의 대장, 육군참모총장 역임 백선엽(白善燁) 장군>

“한국의 애국자 이승만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반공지도자로 존경한다” <유엔군사령관 클라크(Mark W. Clark) 장군>

“이승만을 위대한 한국의 애국자·강력한 지도자·강철 같은 사나이·카리스마적인 성격의 소유자”, “자기 체중만큼의 다이아몬드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닌 인물” <美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James A. Van Fleet)>

“한국의 이승만 같은 지도자가 베트남에도 있었다면, 베트남은 공산군에게 패망하지 않았을 것” <밴플리트 장군의 후임 테일러(Maxwell D. Taylor) 장군>

“이승만은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에서는 타협을 몰랐고, 자기 국민에 대한 편애가 심했고, 불가능한 일을 끈질기게 요구했으나 마음속에는 깊은 애국심으로 가득했고, 애국심에 의지해 오랜 망명생활을 보내고 귀국한 이후 눈뜬 시간의 거의 전부를 나라를 위해 바쳤다”


 

1 Comments
김종석 2012.02.08 01:37  
역시 기록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50년대 당시의 생생한 기록을 성공 홈피에서 볼 수 있게끔 자리를 마련해 주신 노 선배님에
게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선배님 글 중에서 "동문 여러분!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게 아니지 않습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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