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왼손엔 책을
철학자 소크라데스는
감옥 안에서 잠시후에 있을 처형을 앞둔 시간에
옆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노래를 부르던 사람은 의아해서 노래를 배워 뭘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 하기를 " 나는 한가지라도 더 알고서 죽고 십소이다"
There is story that while Socrates was in prisIon awaiting his death,
he heard a man sing song .
Socrates begged the singer to teach it to him.
When asked why,
the great philosopher replied, ' l want to die knowing one more thing."
연녕이 많아질수로 정신건강,침해예방을 위해서라도.
Computer는 물론이고 아무거나 책을읽는습관을 갖이는게
세계유명회사의 보약보담 훨씬낳으리라 믿고있습네다
동문여러분!공부는 학교에서만하는게 아니지않습네까?
무엇이든 우리네삶의지혜를 얻을수만있다면...
호주머니에 들어갈만한 책한권 넣고다니시면서 전철안에서 잠시기다리는시간에 읽으시라요
시간도잘가고 건강에도 좋을테니말입네다
건축과7회 풍산
사진으로보는 6:25전쟁과 이승만대통령의 책중일부를 소개합네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와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의 공동 작업으로 탄생한 이 사진집에는 6·25 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戰時(전시)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진자료들이 실려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現 청와대) 시절부터 보관하고 있던 것을 그의 死後(사후)에 아들 이인수 박사가 연세대학교 이승만 연구원에 기증했다. 어린 노력 등이 담겨 있다. 60여 년 전 이승만 대통령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이룩했는지, 그 결과 대한민국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제1부 <대한민국 건국과 군사외교>에서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건국 과정을 담고 있다. 정부수립 기념식에 참석한 맥아더 원수의 부부 사진이나 6·25 이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 등은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진들이다. 태평양동맹을 협의하기 위해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訪韓(방한)해 진해를 방문한 자유중국 蔣介石(장개석) 총통의 사진도 볼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 초기 위급한 상황에서 다음 4가지의 조치를 내렸다. 첫째,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이 세계대전의 빌미를 제공하는 場(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한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총력전을 펼치겠다, 셋째, 북한의 불법남침을 남북통일의 절호의 기회로 삼겠다, 이 위기를 타개하고 북진통일을 위해서는 미국과 유엔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 “이승만 박사는 현 세기가 낳은 한국 최대의 정치가 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제1급의 애국자·혁명자·지도자”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李應俊) 장군> “전쟁의 위기를 이승만이 아닌 어떠한 영도자 아래서 맞이했다고 해도 그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 <국군 최초의 대장, 육군참모총장 역임 백선엽(白善燁) 장군> “한국의 애국자 이승만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반공지도자로 존경한다” <유엔군사령관 클라크(Mark W. Clark) 장군> “이승만을 위대한 한국의 애국자·강력한 지도자·강철 같은 사나이·카리스마적인 성격의 소유자”, “자기 체중만큼의 다이아몬드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닌 인물” <美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James A. Van Fleet)> “한국의 이승만 같은 지도자가 베트남에도 있었다면, 베트남은 공산군에게 패망하지 않았을 것” <밴플리트 장군의 후임 테일러(Maxwell D. Taylor) 장군> “이승만은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에서는 타협을 몰랐고, 자기 국민에 대한 편애가 심했고, 불가능한 일을 끈질기게 요구했으나 마음속에는 깊은 애국심으로 가득했고, 애국심에 의지해 오랜 망명생활을 보내고 귀국한 이후 눈뜬 시간의 거의 전부를 나라를 위해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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