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변신의 귀재 동물들
[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변신의 귀재 동물들
조선일보. 발행일: 2022.04.12. 오가희 과학칼럼니스트
꼬리 자르고, 암·수 전환 자유자재, 不死의 해파리
최근 '포켓몬 빵'이 인기를 끌고 있어요. 포켓몬은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수백 가지의
캐릭터인데요. 만화 속에서 포켓몬은 변신을 하기도 해요. 이때 새로운 능력이 생기기도 하고, 완전히 모습
이 바뀌기도 하죠. 우리 주변에도 포켓몬처럼 특별한 변신 능력을 가진 동물들이 있는데요.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살펴볼까요?
생존을 위한 꼬리 자르기
공룡과 닮은 모습의 도마뱀은 반려동물로도 인기가 높은데요. 도마뱀을 키우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꼬리
가 잘리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해요.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는 도마뱀의 능력 때문이지요.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는 행위를 '자절(自切)'이라고 해요. 자절은 동물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몸의 일부
를 스스로 절단하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요. 도마뱀은 천적을 만난 위급한 상황에서 꼬리를 잘라요. 꼬리
는 잘려 나간 뒤에도 꿈틀거리며 천적의 시선을 빼앗아, 도마뱀이 달아날 시간을 벌어준답니다. 천적으로
부터 살아남기 위한 생존 능력인 셈이에요.
도마뱀의 꼬리에는 '탈리절(脫離節)'이라는 부위가 있어요. 위급 상황에서 도마뱀은 주변 근육을 수축시켜
꼬리뼈 사이에 있는 이 부위를 스스로 부러뜨리는 거예요. 그 뒤 혈관 주변 근육을 수축시켜 출혈을 막지
요. 도마뱀 꼬리에는 모세혈관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 가능한 것이랍니다.
지난 2월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뉴욕대와 미국 페어레이디킨슨대 연구진은 도마뱀 꼬리 구조
등에 대한 연구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어요. 연구팀은 도마뱀의 일종인 도마뱀붙이(게코도마
뱀)의 꼬리 절단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했는데요.
이 부분은 마치 팽이버섯을 모아둔 것처럼 미세한 기둥이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고 해요. 기둥 끝에는
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단위의 구멍이 있었어요. 이렇게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구조 덕분
에 도마뱀이 스스로 꼬리를 쉽게 잘라낼 수 있었던 거예요.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는 일생에 단 한 번만
할 수 있어요. 잘려나간 꼬리가 다시 만들어지긴 하지만 꼬리뼈는 재생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자손을 퍼트리기 위한 성별 전환
종족 번식을 위해 성별을 바꾸는 생물도 있답니다. 바로 물고기들이에요. 500여 종 물고기가 다 자란
뒤에도 성별을 바꿀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로 잘 알려진 물고기인 흰동가리는 암컷 한 마리를 중심으로 무리를 지어
사는 물고기예요. 만약 이 암컷이 죽으면 무리에 있던 수컷 중 가장 우수한 수컷이 암컷으로 바뀌지요.
반면 용치놀래기는 암컷이 수컷으로 바뀌는 물고기예요. 수컷 한 마리가 암컷 3~4마리와 함께 무리
생활을 하는데요. 수컷이 죽으면 덩치가 가장 큰 암컷이 수컷으로 변한답니다.
이 물고기들이 성별을 바꿀 수 있는 이유는 성별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블루헤드놀래기는 모두 암컷으로 태어나요. 그리고 어느 순간 무리 중 일부가 수컷으로 바뀌지
요. 이들은 눈으로 무리 구성원을 보고 성별을 바꾼다고 알려져 있어요.
암컷은 몸 전체가 노란색인데, 수컷만 머리에 파란 줄무늬, 가슴 부분에 검고 흰 줄무늬가 생기거든요.
암수 비율을 스스로 맞추는 셈이에요. 이 놀래기는 수컷이 사라지면 몇 분 만에 수컷이 될 암컷의 행동
이 바뀌고, 몇 시간 안에 머리색이 변하기 시작하며, 열흘이면 암컷의 생식기관이었던 난소가 수컷의
생식기관인 정소로 바뀐답니다.
성별이 바뀔 때 호르몬과 유전자 변화도 일어나는데요. 우선 여성 호르몬을 만드는 아로마타아제라는
유전자가 비활성화되고, 그 뒤 정소와 고환을 만드는 유전자가 활성화된다고 해요. 왜 이런 일이 시작되는
지는 아직도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어요. 다만 수컷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생긴 스트레스가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영원히 살기 위한 변신 능력
생물이 진화를 하는 것은 죽기 전에 후손을 더 많이 남기고 더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예요.
홍해파리는 특별한 변신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홍해파리의 별명은 죽지 않는다는 뜻의 '불사 해파
리'예요.
해파리는 수중 생활을 하면서 어딘가에 붙거나 둥둥 떠다니며 살아가는 자포(刺胞)동물 종류 중 하나
예요. 보통의 해파리는 알로 번식해요. 암컷 해파리와 수컷 해파리가 만나 만든 수정란은 플라눌라 유생
(幼生)이라는 동물성 플랑크톤이 돼 물속을 떠다니는데요.
그러다가 어딘가에 붙어서 미성숙 단계인 '폴립(Polyp)'이 되지요. 곤충이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와 번데기
를 거쳐 성체가 되는 것처럼, 해파리는 '플라눌라' '폴립' '스트로빌라' '에피라' 등 각각의 단계를 거쳐
어린 해파리로 자라는 거죠.
홍해파리 역시 자연 상태에서는 일반 해파리처럼 이 단계들을 거쳐 성체가 되고 알로 번식하는데요.
상황에 따라 불사의 능력을 보인다는 사실이 1996년 이탈리아 과학자 스테파노 피라이노에 의해 알려졌
어요. 홍해파리를 수조에 넣어뒀는데, 나중에 보니 어린 해파리만 남아 있었던 거예요.
그는 홍해파리 약 4000마리를 관찰하고 연구했어요. 그 결과 홍해파리가 수명을 다하면 죽는 것이 아니
라 번데기 모양의 짧은 플라눌라 시기를 거쳐 다시 폴립이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노화된 세포를
다시 어린 세포로 되돌린 거지요. 이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불사라고 불린답니다.
그렇다고 홍해파리가 정말 죽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천적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고,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면 죽습니다. 또 성체 해파리만이 다시 어린 세포로 돌아갈 수 있을 뿐 중간 단계에서는 폴립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과학자가 노화 연구를
위해 비밀을 밝혀내고 있답니다.
[그래픽] 변신의 귀재 동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