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은 기본권… 이동해야 교육받고 일도 해”
“장애인 이동권은 기본권… 이동해야 교육받고 일도 해”
조선일보. 발행일: 2022.04.20. 양지호 기자
오늘 장애인의 날 / 의료사고로 시력 잃은 김동현 판사
매일 지하철 타고 수원지법 출퇴근 / 하루 1000장 분량 들으며 일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 아파트 계단을 걸어 내려와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2020년 국내 두
번째로 시각장애인 판사가 된 김동현(40)씨다. 그는 반전세로 살고 있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집에서 지하
철을 타고 경기 수원지법으로 출근한다.
시각장애인용 흰 지팡이, 장애인 유도 블록,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지도에 의지해 발을 내디뎠
다. 여느 성인 남성보다도 발걸음이 빨랐다. 지난해 본지 인터뷰에 이어 TV 예능에도 출연하면서 이름이
알려진 그는 최근 에세이집 '뭐든 해 봐요'(콘택트)를 펴냈다. 그를 장애인의 날(20일)을 앞두고 만났다.
김동현 판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로 사회적 관심사가 된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그동
안 평등권과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며 장애인을 차별해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동의 자유가 보장
돼야 일도 하고 교육도 받으며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고, 꼭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
한다"며 "얼마나 절박한 상황이면 그렇게(지하철 시위)까지 하는지 그 사정을 고려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중증 장애인 고용률이 21.8%에 불과한 한국에서 그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관이 됐다. 적절한 도움이 있
다면 중증 장애인도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김 판사는 연세대 로스쿨에 다니던 2012년
의료사고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동안 할 수 있었던 것을 스스로 못 하는 게 답답하고 화가 났다. 화장실 위치를 익히고 혼자 씻기 시작했
다. 사람들 손을 잡고 걸었다. 그는 "해 보니 별것 아니었다"고 했다. 마음을 다잡고 이듬해 로스쿨에 복학
했다. "장애인이 되자 '이것(변호사 시험)밖에 할 게 없는데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이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학교 동기·후배들은 그와 함께 밥을 먹고 수업 내용을 타이핑해 건네
줬다. 한 복지 재단은 그가 변호사 시험 공부를 위해 필요한 교재를 디지털화(化)해 귀로 듣고 공부할 수
있게 했다.
책 1쪽을 원문 대조*까지 마치는 데 드는 비용은 1000원. 해당 재단은 1000만원어치 '번역'을 무료로 해
줬다고 한다. 그는 우등상을 받고 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재판연구원을 거쳐 2020년 법관으로 임용됐다.
하루에 1000페이지가량 문서를 들으며 일한다.
그는 에세이집을 낸 이유로 "사고를 겪어도, 장애가 있어도 잘 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나만
잘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도움 덕분에 그럴 수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동현 판사는 책에서 자신을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위해 사는, 어딘가 불편하
지만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한 인간"이라고 소개했다.
쉬는 날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이 충실한 넷플릭스 드라마와 영화를 '듣고', 여자 친구와 백화
점에서 만나 데이트도 즐긴다.
음성 기반이 아닌 무인 키오스크, 월패드(wallpad) 등은 때로 그를 가로막는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장애인이라는 것이 특별하게 인식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