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 그리움이 恨이 되었습니다
70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 그리움이 恨이 되었습니다
조선일보. 2022-03-18. 김승현 기자
'사격 자세' 백마고지 유해 故 조응성 하사로 밝혀져
"다섯 살이 채 안 되었던 그때도 아버지가 오징어를 사와 맛있게 나눠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녀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심정으로 맛있는 것을 사주셨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17일 인천 남동구의 한 주택. 조영자(74)씨가 70년 전 헤어진 아버지 고(故) 조응성(1928~1952) 하사
의 신원 확인 통지서와 만년필 등 유품을 받아 들며 이렇게 말했다.
조씨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아버지와 헤어졌다. 평범한 농부였던 조 하사는 전쟁이 발발하자
아내와 두 딸을 두고 1952년 5월 제주 1훈련소에 입대했다. 당시 조씨는 다섯 살, 동생은 세 살이었다.
그렇게 헤어진 아버지의 유해가 백마고지 395고지 정상에서 발굴된 건 지난해 10월 28일이었다.
국방부는 지난해부터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 백마고지 부근에서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진행
하고 있다.
국방부는 제9사단 30연대 소속이던 조 하사가 1952년 10월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해
왔다. 백마고지는 고지의 주인이 7차례 바뀔 정도로 국군 9사단과 중공군이 치열한 공방전을 주고받은
격전지다.
발굴 당시 조 하사의 유해는 개인호 바닥에 엎드린 자세였고, 조 하사의 철모와 머리뼈에선 총탄 관통의
흔적이 발견됐다고 한다.
당시 국방부는 계급장 등으로 미뤄 볼 때 국군 전사자의 유해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름이 식별되는
유품이 나오지 않아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었다.
부녀를 70년 만에 만나게 해준 건 유해 발굴 이틀 전 채취한 딸 조씨의 유전자 시료 덕분이었다.
조씨는 2008년에도 국방부의 유전자 시료 채취에 응했지만, 좀처럼 유전자가 일치하는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다.
긴 기다림 속에서 조씨는 새로이 백마고지 유해 발굴 작업을 하던 국방부의 요청으로 다시 유전자 시료
채취에 응했고, 채취 이틀 만에 유해의 주인과 조씨가 부녀 관계로 확인됐다. 신원 확인 소식을 접한 조씨는
"우리 아버지를 찾았느냐고 몇 번을 되물었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조 하사의 신원 확인으로 2000년 4월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총 185명의 국군
전사자 신원이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