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왕후(貞聖王后)한테 배워야 한다.
[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정순왕후(貞聖王后)한테 배워야 한다.
조선일보. 발행일: 2022.04.06.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 지금으로부터 265년 전인 1757년(영조 33년), 이즈음 33년간 영조의 정비(正妃) 자리를 지켜내 조선
의 역대 왕비 중, 재임 기간이 가장 길었던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1693년 1월 12일~1757년
4월 3일)가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셨다.
그리고 삼년상을 마칠 즈음인 1759년(영조 35년) 66세의 국왕 영조(1694~1776년, 재위 1724~1776
년)는 나이 차가 무려 51세 나는 15세 신부를 새 왕비로 맞았다. 김한구의 여식으로 영조의 계비(繼妃)가
된 정순왕후(貞純王后)가 그이다.
# '영조실록' 영조 35년 6월 9일 자에는 "삼간택(三揀擇)을 행하여 유학(幼學) 김한구(金漢耉)의 딸을
정하고 대혼(大婚)을 6월 22일 오시(午時)로 잡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왕비 간택(揀擇)을 위해 초(初)
간택, 재(再)간택을 거쳐 마지막 단계로 삼(三)간택을 거친 것이다. 이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는 이
지면에서 새삼스레 언급할 필요까진 없을 듯싶다.
다만 김한구의 여식이 영조의 계비로 간택 받은 까닭을 짐작하게 하는 일화가 야사(野史)인 '대동기문
(大東奇聞)' 등에 일부 전한다. 세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보태어졌겠지만 그럼에도 문답의 핵심은 민심
을 반영한 것이기에 새겨둘 만하다.
# 먼저, 영조가 친히 왕비 감을 간택하기 위해 좌정해 있는데 김한구의 여식만이 홀로 지정된 자리를
피하여 앉았다. 이에 영조가 "어찌하여 피해 앉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김한구의 여식이 대답하길,
"아비의 이름이 여기 있는데 어찌 감히 그 자리에 넙죽 앉겠습니까" 하는 것이 아닌가.
왕비를 간택하는 자리에 놓인 방석에는 대개 그 아버지의 이름을 써놨기 때문에 그 자리에 그냥 앉을 수
없지 않냐 는 얘기였던 것이다. 영조가 내심 이를 기특히 여겼다. 사실 오늘날 비견해서 보자면 대통령
부인 자리는 남편의 이름자를 깔고 앉는 자리가 아니던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대통령인 남편 자리를 깔고 앉아 뭉개던 이도 있었던 것 같고, 혹은 남편이 대통령은 되었지만
아직 그 자리 근처에도 못 나서는 이도 있는 듯싶다. 하기야 대통령이 될 뻔하다 못 돼 남편 자리를 깔고 앉는
대신 조사실 의자에 앉을 이도 있지만 말이다.
#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영조가 간택에 응한 여러 규수들에게 "꽃 중에서 무슨 꽃이 가장 좋은
가?"라고 물었다. 이에 어떤 규수는 모란꽃이 좋다고 말하고, 또 어떤 규수는 해당화가 좋다고 말했다.
모두 보기 좋은 것을 꼽은 것이다. 하지만 김한구의 여식만은 말하길 "저는 목화가 가장 좋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영조가 그 까닭을 다시 물으니 답하기를 "다른 꽃들은 때에 따라 보기 좋은 데 지나
지 않으나, 오로지 목화만은 온 천하 사람들에게 옷을 지어 입혀 따뜻하게 해주는 이득과 공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떠오르는 것을 용서하시라! 내가 입어 보기 좋은 것을
찾고 쫓을 것이 아니라 국민을 먼저 보듬어 안았다면 임기 막바지에 옷값이 어떻고 하는 얘기 자체가
없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모란도 해당화도 아닌 목화를 꼽아 훗날 정순왕후가 된 김한구의 여식
같은 마음을 진즉에 가졌으면 좋았으련만….
#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영조는 어린 규수가 총명하다 생각하고 다시 물었다. "무엇이 가장 넘기 힘든 고개
인가?" 어느 규수는 '대관령 고개'라고 하고, 또 다른 규수는 '조령 고개'라 했다. 저마다 넘기 힘든 고개를
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김한구의 여식은 남들과 다르게 '보릿고개'라 했다. 영조가 그 까닭을 물으니 이렇게 답했
다. "눈앞에 보이는 고개야 반보(半步) 앞이 평지(平地)다 생각하고 걸으면 못 넘을 바 없지만 해마다 봄에
곡식이 떨어져서 보리가 나올 때까지 배고픔을 참고 넘어야 하는 춘궁기의 보릿고개야말로 참으로
넘기 힘든 고개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가을에 거둔 양식이 봄이 되자 다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햇보리는 아직 나오지 아니한 때 하루 세 끼는
커녕 두 끼, 아니 심지어 한 끼조차 때우기 어려운 때를 보릿고개라 하지 않았던가. 겉으론 풍요가 만연
한 오늘의 기억 속에서는 아련한 추억 같은 것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반세기 전만 해도 오죽하면 선거 구호
가 '일일삼식(一日三食) 보장'이었겠는가.
이 문답을 보노라니 지난 대선 때 '법카 논란'을 야기했던 이재명 후보의 부인 김혜경 여사가 떠오르는 것
역시 용서하시라! 국민들은 조 단위의 돈이 논란이 되었던 대장동 사건보다 그보다 수백 수천 배 적은 몇 만
원 단위의 돈으로 한우 등 먹거리를 임의로 결제했던 '법카 논란'에 더 많이 분노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
기 때문이다.
비록 진짜 보릿고개는 우리 삶에서 멀어졌을지언정 우리 마음의 보릿고개는 아직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일국의 대통령 부인이 되고자 한다면 국민의 허기진 배와 마음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
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영조가 또다시 물었다. "무엇이 가장 깊은고?" 그러자 어떤 이는 산이 깊다고
말하고, 또 다른 어떤 이는 물이 깊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한구의 여식만은 "사람의 마음이 가장 깊습니
다"라고 말했다. 영조가 그 까닭을 물으니, "사물의 깊이는 자로 재서라도 헤아릴 수 있겠으나, 사람의 마음
은 여간해서 재기도 헤아리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마음, 곧 인심(人心)
은 헤아리기 힘들다. 때로 그것은 변덕과 변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깊고 심오하다.
이제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차례다. 얼마 전 자신의 집 주변에서 경찰특공대 폭발물 탐지
견과 마주한 것처럼 이제는 국민과 마주할 때다. 진심으로 마주하려면 국민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그 점에서 정순왕후한테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