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에서 軍歌 소리가 안들린다
육군에서 軍歌 소리가 안들린다
조선일보. 발행일: 2022.03.05. 박정훈 기자
자대배치 후엔 군가교육 자율… 인권침해 우려에 암기 강요안해
작년 초 군(軍)에 입대한 육군 병사 A씨는 논산 육군훈련소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 최근까지 군가를 제대
로 불러본 적이 없다.
훈련소에서는 군가 수첩을 나눠 주고 앞으로 많이 부르게 될 '육군가' '전우' 등의 군가를 외우게 했지
만, 정작 부대 배치를 받고 난 후에는 군가 부를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얼마 전 행군을 다녀올 때도 말없이 걷기만 했다"고 했다. 육군 병사 B씨도 "'육군 10대 군가'로
꼽히는 노래와 신병교육대에서 준 교육 가이드북에 적혀 있는 모든 군가를 다 외웠는데, 부대 배치를
받고는 불러본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공군·해군에 비해 육군 병사들은 장거리를 걷거나 뛰어서 이동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아 군가를
많이 부르는 편이었다. 하지만 육군에서조차 군가를 잘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하사로 육군에서 전역한 박모(23)씨는 분대원 20여 명을 이끌고 3km를 달린 적이 있는데 "병사
들이 '멋진 사나이' '멸공의 횃불' 같은 군가도 잘 몰라 웅얼거리는 바람에 애를 먹은 적이 있다"고
했다.
병사들이 군가를 잘 모르는 것은 부대에서 군가 암기를 강제할 수 없게 된 영향이 크다. 최근 몇 년 새
군 내부에서 병사들에 대한 가혹 행위나 인권침해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면서 군가를 무조건 외우게
했던 관행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육군 간부는 "인권침해 문제 등이 벌어졌을 때 가해자에 대해 강력한 조치가 나오고 있어 혹시 군가
를 외우게 하다 문제가 생길까 봐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코로나 사태가 2년 넘게 이어지면서 단체
훈련 등이 줄어 군가를 부를 기회 자체가 감소한 것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군에서는 이런 변화가 고민이지만 장교와 사병들의 생각은 엇갈린다. 수도권 육군 부대에서 근무 중인 한
간부는 "인권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조직력과 사기를 높이려면 군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육군
병사 C씨는 "소속감을 높이는 방법이 군가만 있는 건 아닌데, 군가 안 부른다고 군기 빠진 '당나라 군대'
가 된다고 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