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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우주선 개발, 국가 경쟁서 러에 밀렸지만… 민간 기업이 나서 역전

[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美 우주선 개발, 국가 경쟁서 러에 밀렸지만… 민간 기업이 나서 역전

                              조선일보. 발행일: 2022.04.25. 민태기 에스엔에이치 연구소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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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민간인들만 탑승미국 스페이스X의 유인우주선이 국제우주정거장에 도착했다. 이들이 부

담한 비용은 1인당 5500만 달러(약 676억원)로 비싸다. 그러나 아폴로 우주선에 비하면 훨씬 저렴해진 것

이다. 

 

 아폴로 우주선 당시 1인당 비용은 3억9000만 달러(약 4800억 원)로 이번 스페이스X 비용의 7배에

한다. 이는 개발된 우주선으로 우주를 왕복하는 비용이고, 우주선 연구개발비는 이보다 훨씬 많다. 

 

 예컨대 미국 정부가 아폴로 계획에 사용한 예산은 258억 달러에 이른다. 아폴로가 달에 착륙한 1969년

당시 금 시세(그램당 1.32달러)로 환산하면, 무려 1만9500톤의 금을 쏟아 부은 셈이다. 3.75그램에 30만

원 정도요즘 금값으로 생각하면 1560조원에 달한다. 

 

 우주여행 비용을 대폭 낮출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국가 간의 자존심을 건 경쟁이 있다.

 

 인간이 우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은 19세기 말 러시아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Konstantin 

Tsiolkovsky)에서 시작되었다. 볼셰비키 혁명을 거친 소련에서 그의 후계자들이 속속 등장한다. 

 

 그중 가장 독보적인 인물우크라이나 출신의 세르게이 코롤료프(Sergei Korolev). 미국의 우주개발을 

이끈 폰 브라운에 비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소 냉전 시대에 최초의 위성 스푸트니크와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탄생시킨 전설적인 인물이다. 

 

 1930년대 이미 로켓 제작을 시도했던 코롤료프는 스탈린의 대숙청에 휘말려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우주 개발 같은 쓸데없는 연구로 인민의 재산을 낭비했다는 이유였다. 

 

 그가 주목받은 것은 치올콥스키의 구상을 실현한 독일의 V2 로켓 때문이다. 전후 미국과 대결이 불가피

한 소련은 강력한 미사일이 필요했다. 비행기로 핵무기를 투하한 미국과 달리 항공 기술이 뒤처진 소련은

탄도미사일이 절실했기에 코롤료프를 복귀시켰다. 

 

 미국 역시 V2 개발자 폰 브라운을 데려가 로켓 개발을 하고 있었지만 진도는 느렸다. 코롤료프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1950년대에 이르러 V2를 능가하는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한다. 그는 이를 이용해 인공위성

을 궤도에 올리면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당국을 설득한다. 이렇게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

크가 탄생했다. 

 

 1957년 소련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렸다. 달에 이어 두 번째 위성을 지구에 선물한 셈이다.

 이때만 해도 소련 당국은 인공위성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스푸트니크의 성공 소식은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 구석에 조그맣게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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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스푸트니크가 보내는 신호를 포착한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코롤료프의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역사는 이를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부른다. 코롤료프는 멈추지 않았다. 더 대담한 계획을 추진한다.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에 성공하며 미국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미국이 아폴로 

계획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 것은 소련에 질 수 없다는 절박함이었다. 

 

 하지만 폰 브라운조차 몰랐을 정도로 코롤료프는 존재 자체가 극비였다. 스푸트니크와 유리 가가린이 

던진 엄청난 충격에 경의를 표한 노벨상 위원회는 이 프로젝트를 이끈 과학자가 누군지 문의했지만, 소련 

정부는 끝까지 함구했다. 

 

 이 무렵, 코롤료프의 건강이 나빠진다. 강제수용소 생활로 얻은 지병이 문제였다. 결국 그는 수술대 위에

서 사망한다. 1966년의 일이다. 그제야 소련 당국은 코롤료프라는 이름을 공개했다. 그의 사망으로 리더십

을 상실한 소련의 우주개발은 급격히 위축되고, 1969년 미국이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키며 추월

다. 

 

 코롤료프의 천재성은 최적으로 단순화한 설계와 저비용의 우주 개발에 있다. 또한 거대한 엔진 대신 

작은 엔진들을 묶는 클러스터링(clustering)을 개발해 초기에 소련이 앞설 수 있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

고, 그사이 폰 브라운이 거대한 엔진을 클러스터링하며 인간을 달에 보냈다. 

 

 그러나 NASA의 고비용 구조는 결국 미국의 발목을 잡는다. 천문학적 비용의 아폴로 계획이 종료되자 

인간을 달에 보낸 거대한 엔진을 더 이상 만들지 못했다. 대신 우주왕복선으로 비용을 절감하려고 했다. 

 

 하지만 1인당 비용은 여전히 1억7000만 달러(약 2091억 원)에 달했다. 게다가 몇 번의 사고를 거치며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어 2011년 폐기되고 만다. 

 

 반면 코롤료프가 설계한 유인 우주선 소유스는 계속 사용되고 있었다. 게다가 1인당 비용은 8000만 달러

(약 984억 원)로 우주왕복선의 반도 되지 않았다. 

 

 결국 미국은 자존심을 접고 러시아의 소유스 우주선을 빌려 사용하게 된다.

 

 고비용 엔진에 고심하던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가 러시아 로켓 엔진을 수입하기로 결정한다. 그만큼 코롤료

프의 우주선과 엔진은 여전히 강력했고, 훨씬 싸고 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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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점을 정확히 파악한 것은 일론 머스크였다. 그는 스페이스X를 설립하며 코롤료프의 저비용 방식에 

주목했다. 여기에 독자적인 재사용 기술을 더해 비용을 더욱 줄이며 러시아를 따라잡기 시작한다. 

 

 2020년 5월, 마침내 일론 머스크는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다. 최고의 가성비로 군림하던 러시아의 

소유스민간 기업이 더 낮은 가격으로 대체한 것이다. 자신감을 얻은 미국 정부는 2021년 더 이상 러시

아 엔진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스페이스X와 블루오리진과 같은 실리콘밸리의 거대 자본들이 앞 다투어 우주 투자에 나선 결과였다. 

 한때 우주 개발은 국가만이 할 수 있는 과학이었지만, 국가 경쟁이 촉발한 비용 절감이 민간의 우주여행

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한편, 일론 머스크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코롤료프를 꼽았고, 2020년 7월 코롤료프의

후손들을 스페이스X에 초청했다. 

 

[그래픽] 우주선 종류에 따른 우주여행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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