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物相] 사라진 꿀벌
[萬物相] 사라진 꿀벌
조선일보. 발행일: 2022.02.22. 김태훈 논설위원
벌은 전 세계적으로 약 2만 종이 서식한다. 그중 인간의 혀에 황홀함을 선사하는 꿀벌은 아피스속(屬)의
10여 종이다. 한반도에서는 2000년 전부터 토종벌을 길렀고, 100년 전 서양 벌도 수입해 꿀을 얻고 있다.
꽃이 피면 꿀벌은 최대 4㎞까지 날아가 꿀을 딴다. '조그만 날개 고단하여 너무 지쳤지마는/ 머나먼 나라
까지 꽃을 찾아서~'라는 동요 '꿀벌의 여행' 가사 그대로다.
▶ 인간은 그 고단함에 기대어 풍성한 식탁을 누려왔다. 식량·과일·사료용 작물의 30%가 벌의 가루받이에
의존한다. 꿀벌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경제 가치가 50조원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공동체에 헌신하고 협동
하는 꿀벌 생태는 예술적 상상력의 샘도 되어줬다. 오페라 '술탄 황제의 이야기'에서 연주되는 '왕벌의
비행'은 피아니스트의 빠른 손놀림으로 벌의 윙윙거리는 날갯짓을 표현한다. 가요 '땡벌'은 땅속에 집
짓고 억척스레 살아가는 '땅벌'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 미국에서 2006년 꿀벌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보고됐다. 2010년대 들어 최근까지
40%가 감소했다고 한다.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벌 개체 수가 줄고 있다. 벌은 한두 마리씩 감소하지 않고
벌통 단위로 통째 몰살하는 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CCD)을 보이는 게 특징이다.
꽃가루를 찾아 나선 벌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면서 몰살을 겪는다. 학자들은 무선 장비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나 특정 농약이 벌의 귀소(歸巢)를 방해한다고 의심한다.
▶ 네오니코티노이드라는 농약에 오염된 꽃가루를 먹은 꿀벌은 길 찾기 능력을 잃는다는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현재 유럽에선 이 성분이 들어간 농약을 비닐하우스에서만 쓰도록 제한하고 있다. 우리도 벌 집단
폐사를 겪었지만 원인은 다르다. 10여 년 전 '벌의 구제역'이라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으로 토종벌이 90%
넘게 폐사했다. 2010년 이전 42만여 개에 달하던 벌통이 한때 1만개까지 급감했다.
▶ 간신히 피해를 복구한 양봉업계에 다시 비상이 걸렸다. 올겨울 경남·전남 일대에서 겨울을 나던 꿀벌
수십만 마리가 사라졌다. 낭충봉아부패병 때문이라면 벌통 주변에 죽은 벌이 있어야 하는데 벌통 11만
개가 텅 비었으니 원인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가을에 노출된 살충제의 영향으로 귀소하지 못했거나, 이상기후로 계절을 착각한 벌 무리
가 외출했다가 얼어 죽었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어느 경우이든 인간이 초래한 환경 재앙일 가능성
이 크다.